저는 복현동 한자리에서 18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자리에서 지키고 노력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한 아이의 처음과 끝을 모두 보기 위해서입니다.
초등에서 만난 아이가 고3이 되어 나가기까지, 그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의 시간을 함께하며 저는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실력의 차이는 재능보다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에서 갈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이마다 다른 시간을 설계하는 일을 제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초등, 영어가 과목이 되지 않도록
처음 고민은 초등부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EFL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교실 문을 나서면 영어가 사라지는 환경이지요. 이런 곳에서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방식만 반복하면, 성적은 잠깐 오르지만 언어는 몸에 남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가서 무너지는 아이들을 여러 번 보면서 저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교과서를 기반으로 하되, 한국 아이들의 환경에 맞게 다시 설계한 학습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자기 말로 정리해 보는 과정을 수업 안에 넣었습니다. 말하고 쓰면서 익히는 구조입니다.
순서도 그냥 정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영어 어순을 몸에 익히고, 언어의 기본기를 잡은 뒤 단계별 리딩으로 넘어갑니다. 어디서 출발할지는 아이마다 레벨테스트로 정합니다. 이 순서를 끝까지 밟은 아이들은 영어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시험 과목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받고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의 수단이 되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영어로 된 글에서 필요한 정보를 꺼내 쓸 줄 아는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앞서 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답이 나왔습니다. 저희 학생들 중 국제고에 진학한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고, 더 반가웠던 것은 그 아이들이 입학한 뒤에도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합격보다 그 뒤가 늘 더 걱정이었기 때문에, 그 소식들이 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중학교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 일
그다음 과제는 문법이었습니다.
중학교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개념이 아니라 요령만 익힌 경우였습니다. 시중 교재로는 제가 원하는 순서와 깊이를 만들 수 없어서, 결국 자체 문법 교재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마다 속도와 학년에 따라 길을 나눴습니다. 핵심 개념을 깊이 있게 다지는 과정, 개념을 더 정밀하게 확장하는 과정, 중등 문법을 한 권으로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어느 과정이든 끝나는 날을 먼저 정해 두고 그 안에 끝냅니다.
기간을 정해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막연히 오래 붙잡고 있는 공부는 아이를 지치게 할 뿐입니다. 끝나는 지점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완성해야 아이도 자기 성취를 느낍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문법의 뼈대를 세운 아이는 곧바로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날마다 정해진 분량씩 문장 구조를 풀고, 많은 문장을 외우고, 분석하고, 끝까지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분량만 보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도 기간과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는 문장을 익히는 동안 문법을 완성하는 동시에,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을 끝내는 힘을 함께 갖추게 됩니다. 고등 1등급을 준비하는 기본기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중등 3년을 고등 준비에 쓰기로 한 이유
이만큼 쌓아온 아이들에게 중등 3년은 고등을 미리 사는 시간입니다.
고1 3월 모의고사를 처음 받아든 아이의 표정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 시험이 '처음 보는 시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중등 과정은 고등 모의고사 대비에 집중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읽고 해석해서 푸는 방식은 다루지 않습니다. 지문을 읽어내는 힘과 문제를 읽어내는 힘은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해석이 되는데도 답을 못 찾는 아이들은,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 훈련받은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 중등 과정의 중심에 둔 것이 직접 만든 교재입니다. 문제의 요구를 파악하는 훈련에서 시작해, 유형별 접근법을 하나씩 몸에 붙입니다. 지문을 읽어내는 힘, 문장을 분석하는 힘, 정확하게 해석하고 써내는 힘을 차례로 쌓습니다. 그리고 고등 모의고사 문제를 중등 때 미리 풀어 봅니다.
고등에 올라가면 직접 만든 교재로 수능 유형을 끝내고, 학교별 내신은 아이마다 따로 자료를 만들어 준비합니다.
고등에 올라갔을 때 시험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과정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길을 지나온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방향을 잡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각자의 로켓을 타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간다고 느낍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 궤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옆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18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찾습니다. 이 아이는 어디서 시간이 새고 있는지, 어떤 유형에서 반복해서 걸리는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다시 나눠야 하는지. 매일 그 고민을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에게는 이 고민이 즐겁습니다. 아이가 마음껏 꿈꿀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그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 주어야 하고, 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멈추지 않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꿈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자리까지 같이 가겠습니다.
STC 에스더 영어학원 원장 박현미
대구 북구 복현로 71 명문세가상가 302호